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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는 제주가 중심이 돼 문명사를 들여다보는 장치”
[INTERVIEW] 이종후 제4회 제주비엔날레 총감독
섬, 제주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배를 다루는 능력이 탁월했다. 배를 잘 짓고, 능숙하게 운영한 이들이었다.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이와 같은 제주 사람들의 모습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그건 섬 사람들의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대신 그들은 죽음과 맞서 싸워야 했다. 배를 아무리 잘 만들고 다루더라도 높은 파도와 바람을 이기는 건 어렵다. 죽음을 불사하기도 하고, 부서진 배에 실려 바다 위를 떠돌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제주 사람만 그랬을까? 아니다. 바다 위를 이동하는 모든 이들이 그랬다. 제주를 빠져나간 이들도 표류하고, 다른 지역의 사람들 또한 표류를 통해 제주 땅을 밟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표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극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그 이면엔 놀라운 점이 있다. 표류는 서로 다른 지역 간의 이동을 유도하고, 문화 교류를 강제한 도구였다. 2024 제4회 제주비엔날레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이번 제4회 제주비엔날레는 《아파기(阿波伎) 표류기》를 주제로 담아 내고, 표류를 문화로서 이해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아파기는 역사서에 한차례 등장한다. 일본서기에 탐라 왕자 아파기의 존재를 입증하는 기록이 있다. 일본서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사진출처= 미디어제주
"탐라가 처음으로 왕자 아파기 등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耽羅始遣王子阿波伎等貢獻)."
- (일본서기 권 26 天?財重日足姬天皇 齊明天皇 661년 5월 23일)
왜 아파기는 일본으로 가야 했나?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당나라로 갔던 일본 사신단이 돌아가던 길에 표류하고, 탐라에 도착하게 되면서 사건이 일어난다. 일본 사신단 일행은 8박 9일을 해상에서 떠돌다가 탐라에 안착하고, 아파기 일행을 만나게 된다. 아파기는 일본 사신단을 따라서 일본으로 향했다. 표류가 문화 교류였음을 역사가 보여 주는 장면이다.
제주비엔날레가 '표류'를 키워드로 제시한 점은 신선하다. 그러나 제주비엔날레가 가야 할 길엔 큰 산이 버티고 있다. 비엔날레를 영속적으로 진행하려면 별도 기구가 필요할 텐데, 지금은 그런 구조가 되지 못한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제주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이종후 제주도립미술관장을 만났다.
원문 출처 : 미디어 제주 김형훈 기자
https://www.mediajeju.com/news/articleView.html?idxno=353675